어제는 공장 마당 한쪽이 유난히 분주했습니다. 에콰도르로 보내질 볍씨 파종용 육묘상자와 함께 소형 정미기가 도착했기 때문인데, 입고 확인서를 작성하고 나니 문득 작년 이맘때쯤이 떠올랐습니다. 경북 김천의 한 육묘장에서 연락이 왔었죠. 육묘상자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쌓아둔게 문제였습니다.
제품은 문제가 없었는데 ‘적재 방식’이 문제였던거죠. 무리하게 쌓아 운반하다 보니, 아래쪽 두 단이 못 견디고 찌그러졌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로는 입고할 때부터 이런 부분을 꼼꼼히 따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에콰도르 출하 준비에서는 그래서 가장 먼저 검토한 게 정미기나 육묘상자의 규격과 함께 '적재 방식'이었습니다.
작은 농자재 하나도 "어떻게 갈 건지"가 중요합니다
에콰도르는 30도 넘는 고온 다습한 환경입니다. 논도 많지만, 육묘 시스템은 아직 기계화가 활발하지 않아 모든 게 낱개 운송 위주입니다. 상대적으로 기계 충격이나 햇빛 노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도착한 육묘상자는 모두 중간 포장 없이 10개 단위 팩으로 묶여 팔레트에 적재됐습니다. 비슷한 수출입 작업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팔레트 적재 방식'은 통관 항차나 컨테이너 공간 배치에도 영향을 줍니다. 단 몇 센티의 높이 차이로 한 판이 덜 들어가기도 하죠.
포장은 ‘현지에서 꺼내 써야 하는 사람 기준’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운반할 때 흔들림은 잡히는가’ ‘한 묶음 단위로도 필요한 갯수 계산이 쉬운가’ 등을 사전에 반영해야 현지 농장에서 불필요한 포장을 벗기지 않아도 되고, 중간 유통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거든요.
정미기 같은 2차 농기계는 '용도'보다 '관리'가 우선입니다
해외 농업 현장에도 정미기, 육묘상자, 로터베이터 처럼 다양한 농자재가 필요합니다.
입고된 정미기는 국내에서 흔히 보는 소형 정미기입니다. 볍씨를 정선하고 다시 모판에 파종할 수 있도록 돕는 흐름이죠. 문제는 이 정미기가 현지에서 매일 세척이나 윤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란 겁니다.
로터베이터와 마찬가지로 구조상 흙과 직접 맞닿기 때문에 포장 적재 방식뿐 아니라 부품 마모와 관리 편의성이 현지 적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하루 5~10회 정도 반복 작업이 가능하도록, 고무부 와샤나 볼트 고정방식도 최대한 단순해야 합니다. 일부 부품은 분해 없이 노즐 하나로 세척이 되는 구조면 좋은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세세한 사항은 도면에 잘 표시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조립하다 발견하거나, 피드백 중간에 튀어나오는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니, 결국 기계는 실전에서 배워야 알게 되는 것이죠.
운송보다 더 까다로운 건 '되돌리지 않게 만드는 일'
수출 업무를 하다 보면 운송도 만만치 않지만, 훨씬 더 신경 쓰는 건 '문제 생겨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특히 농자재는 계절이라는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한번 일정이 엇갈리면 그냥 다음 철로 넘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건도 일정이 제법 타이트했습니다. 수확 후 이듬해 파종 기준에 맞춰 약 3개월 전부터 장비를 확보하고 기준 품목을 정해뒀습니다. 예전처럼 현지에서 직접 써보고 판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영상 매뉴얼→현지 데모→확약’의 형태로 흘러가야 했기에 더 치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했죠.
출하 전 마지막 체크리스트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붙습니다.
"이대로 현지에서 바로 쓸 수 있는가?"
국내에서 완벽하다고 해도, 현장에서 말없이 쓰일 수 있어야 진짜 완벽한 겁니다.
수출이라는 말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만드는 농기계와 농자재는 늘 누군가의 “올해 농사 준비물”입니다. 땅을 어떻게 고르고, 어떤 종자를 뿌리고, 어떻게 걷어 들일지—그 여정 중 어딘가에 저희가 만든 제품이 놓인다는 책임감을 생각합니다.
이번 에콰도르 건이 순조롭게 잘 적응해서, 현지에서도 ‘이건 그냥 이렇게 쓰면 되는’ 물건으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늘 그렇듯 출발선에서 짚어두는 아주 사소한 차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린맥스 강대식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