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 아래, 포도송이가 알알이 익어가는 영천 알프스 농장을 다녀왔습니다. 이맘때쯤이면 농장 전체가 연둣빛과 보랏빛 사이 어딘가로 물들죠. 특히 샤인머스켓은 외관이 반들반들하고 송이가 커서, 수확할 때마다 손이 아주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런데 그 손길을 기계가 대신한다면 어떨까요?
이번 현장 방문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린맥스가 준비 중인 샤인머스켓 수확 로봇과 자율주행 방제 로봇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농장주 및 기술 파트너들과 개발 방향을 협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수확을 기계가 할 수 있을까?”는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농장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었습니다. “수확을 기계로 대신하면 좋긴 한데, 샤인머스켓은 그냥 따면 안 돼요.”
이 말 한마디에 많은 답이 담겨 있었습니다. 샤인머스켓은 송이당 알갱이 크기나 배열이 일정하지 않고, 줄기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게다가 시장에서는 ‘송이의 모양’이 상품성을 좌우하니, 손 하나 잘못 갖다 대면 상품가치가 뚝 떨어지죠. 그래서 단순한 로봇팔 수준의 기계로는 부족합니다.
결국 수확 로봇이 갖춰야 할 건 ‘정확히 보고, 조심스럽게 따는 능력’입니다. 이번 현장에선 포도송이 밀도, 잎과 줄기의 간격, 수확 시기별 색 변화 등을 직접 측정하며 센서 구성과 로직 설계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자율주행 방제 로봇, “하우스 안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나요?”
두 번째 주제는 자율주행 방제 로봇이었습니다. 이건 수확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이었습니다. 영천 알프스 농장은 대부분 하우스 재배라, 공간이 좁고 구조가 복잡합니다. 트랙터나 대형 기계는 들어갈 수 없고, 인력 방제는 시간과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들죠.
이번에 논의된 방제 로봇은 하우스 내부 환경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좁은 동선에서도 자율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 중입니다. 핵심은 가벼운 섀시, 커브 회전 반경 최소화, 그리고 방제액의 미세 분사 조절입니다. 특히 미세먼지나 잎 표면의 수분 상태에 따라 분사량을 자동 조절하는 기능이 요청되었는데, 이건 단순한 자동화가 아닌 ‘농업 환경에 맞는 지능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장 목소리에서 시작되는 설계

기계 개발은 도면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완성됩니다. 지난 번 몽골 밀밭에서 로터베이터 테스트할 때도 느낀 바지만(참조글 보기), 농기계는 땅과 작물, 그리고 농부의 습관까지 함께 고려한 ‘맞춤형’이어야 합니다.
이번 영천 협의에서도 중요한 단서들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수확 로봇은 단순히 송이만 따는 게 아니라, 송이에 붙은 나뭇잎을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고, 방제 로봇은 하우스 구조에 따라 GPS가 잘 안 먹히는 구역에서는 라이다 기반 보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요구사항은 현장에서 직접 들어야만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늘 기계가 투입될 자리에서, 실제로 사용하게 될 분들과 이야기하는 걸 가장 먼저 합니다.
단순히 ‘로봇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농장의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기계가 일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본질이니까요.
샤인머스켓 수확 로봇은 이제 막 기획 단계를 지나, 프로토타입 제작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방제 로봇도 하우스 전용 모델로 기능을 세분화하고 있으며, 올해 가을 안으로 첫 필드 테스트를 계획 중입니다.
언젠가 영천의 샤인머스켓 농장에서 “이 로봇 덕분에 수확 시기가 훨씬 여유로워졌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그린맥스는 오늘도 농장 한가운데서 고민하고, 설계하고, 조정하고 있습니다.
작은 수확이 쌓여 큰 기술이 되고, 그 기술이 다시 농장의 일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요.
그린맥스 대표 강대식 드림




